‘멋진 신세계’ 를 읽었다

오랜만에 소설을 하나 읽었다.

‘1984’와 함께 미래소설로 유명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다.
문예출판사 이덕형 옮김 으로 읽었는데, 이 번역본의 번역은 너무 이상해서 책을 읽는데 거슬림이 많았다. 기회가 되면 다른 번역본으로 다시 읽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 부분과 중간 부분은 지루하고, 약간은 의미없는 이야기로 채워져있다. 마지막 부분에서 총통과 야만인의 대화에서, 지금까지의 그 지루하고 의미없었던 이야기의 조각들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한꺼번에 설명 해준다.

행복, 쾌감 이런 것들이 모두 상대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해주는 소설이다. 만약 매일 배부르다면 배부르다는 것의 즐거움이 크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만약 몸과 사상이 자유롭다면 자유가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언제나 잘 해준다면, 그 사람의 당신을 향한 사랑은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이 멋진 신세계에서는 배고프지 않고, 가족을 챙겨야 하는 의무감도 없고, 죽음에 대한 공포도, 늙는 고통도 없는 사회이다. 이 사회에서 인간들은 자신에게 할당된 제한된 즐거움을 즐긴다. 그들은 그 즐거움이 제한된 즐거움이라는 것을 느낄 수 없도록 사회는 이미 모두 잘 조정되어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불행도 고통도 없기에 커다란 행복, 커다란 즐거움도 없다.
작은 행복이 무한히 반복된다.

그들은 그 들이 누리고 있는 행복이 ‘작은 행복’ 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도 ‘큰 행복’을 쫒아서 갈 의지도 용기도 없도록 교육받았다. 그들에게는 그 작은 행복이 어느순간 날아가지 않을 것이고, 그 행복이 죽음으로 끝나더라도,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도록 교육받았다. 하지만 야만인은 그가 가진 도덕적 가치관으로 인해 그 ‘작은 행복’을 택하지 못한다.

지금 우리를 괴롭히는 노화, 죽음, 병, 집착 이 있기에 젊음, 삶, 건강, 사랑 이 가치가 있는 것이다. 노화, 죽음, 병, 집착이 아예 없어진 그 멋진 신세계에서는 젊음, 갊, 건강, 사랑은 가치가 적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치가 아예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PS 1.
야만인은 이 신세계에 적응하기 보다는, 자신의 도덕적인 가치관을 선택한다. 작가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한편으로는, 야만인은 왜 꼭 자신의 가치관을 고집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나라면 그냥 신세계를 택하지 않았을까? 그는 결국 파멸에 이른다.

PS 2.
문명사회와 대치되는 사회로서 아프리카 원주인 비슷한 부족문화를 제시하고 있다. 그 것 보다는 조금 더 현대화 된 사회 (평범한 현대사회)를 제시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지 않았을까? 소설에 등장하는 원시문명을 묘사하느라 쓸데없는 페이지만 낭비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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