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기, 찍히기 그리고 총 쏘기

바야흐로 사진의 범람시대다. 내가 어릴적만해도 필름값도 아깝고 인화비도 아까워서 특별한 날에나 찍던 사진이.. 이제는 필름값 걱정없는 디카의 시대를 넘어 DSLR의 보급화와 또 폰카.. 로 인해 카메라는 말그대로 ‘어디에나’ 있다.

이번에 네팔 봉사단이 2주동안 활동하면서 20명의 대학생이 찍은 사진은.. 약 1만2천장에 다른다. 20명이 사진을 모아서 DVD에 구웠더니 2장에 빠듯 들어가더란다. 9기가를 넘어서는 대단한 양이다. 3년 전만해도.. 이런 일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우리 네팔봉사팀은.. 봉사중간에도 ‘남는건 사진’이라고 자신들에게 일깨우면서 부지런히도 셔텨를 눌러댔다. 똑딱이, DSLR, 필카 모두 동원 되었다.

이제 사진을 찍고 찍히는 건 너무 면역이 되었다고 느끼는 즈음.. 한겨레 21을 읽다가 만난 한 취재 이야기는 마음에 와 닿는다.

사진을 찍는 행위에는 항상 공격성이 내재해 있다고 수전 손택이 < 타인의 고통>에서 쓴 적이 있다. “카메라와 총, 그러니까 피사체를 쏘는 카메라와 인간이 쏘는 총은 동일시 될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취재 행위도 본질적으로 타자에 대한 식민성이 내재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처음 기자를 만나는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의미 체계가 기자를 통해 오롯이 기사에 옮겨질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기자의 머리에는 기자가 쓰고자하는 ‘주제’의 비수가 숨겨져 있으며, 때로 그 비수는 취재원을 찌르기도 한다. 그리고 기사에는 기자가 해석한 세계만 펼쳐질 뿐이다.

그렇다. 우리는 수없이 셔텨를 누르면서 그들을 ‘타겟’으로, ‘대상’으로 생각하게 된다. 물론 그 네팔의 순진한 아이들, 같이 시간을 보낸 사람들을 찍을때, 기자들이 아프리카에서 굶은 아이들을 향해 무작정 셔터를 누르듯이 사진을 찍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내재되어있는 ‘사진을 찍는다’는 행동은 그들을 대상으로 삼는.. 그런 심리가 내포되어있다. 그래서 사진을 같이 찍을때는 같이 찍어도 되냐고 정중히 물어야 하는 것이다.

위의 글은, 기자의 입장에서 쓴 글이라서 우리의 경우에는 조금은 안 맞을 수도 있다. 실제 아이들은 ‘one picture~ one picture~’ 하면서 사진을 찍히고 싶어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들은 사진을 찍히는 것에대한 의미를 잘 알지 못한다. 나도 대부분의 경우에 그들과 함께, 또는 동의를 구하고 사진을 찍었지만, 때로는 나도 그들을 피사체로서 보고서 사진을 찍은 일도 많았다. 네팔에서, 역시 봉사단의 멤버였던 J양은 그런 이유로 아무때나 사진 찍는것을 싫어하는 듯 보였다.

또한 우리가 찍는 사진은 위 발췌 글의 ‘기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아이들은 사진을 찍으면 우리가 사진을 인화해서 준다고 생각했을까? 그래서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것일까? 왜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것일까? 하는 부분은 우리 네팔 봉사팀에서도 잠시 지나가는 의문점이기도 하였다. 사진이 흔치않은 네팔에서, 그들은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히는 것에대한 의미도 모르고 있다. 물론 우리가 그 사진을 악용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네팔에서, 그들이 사진을 찍히며 자신이 피사체로 느껴진 일이 없었기를, 상처받은 일이 없었기를 바란다. 또 나에게 ‘Amar(나의 네팔이름 – 기억속에서 죽지 않는자 – 잊혀지지 않는자 – 라는 뜻) don’t forget me~!’ 라고 말해주던 네팔의 소녀들이 기억나면서 그들이 찍힌 사진이 그들을 기억하는 좋은 의도로만 사용되기를 바래본다.


  1. tebica Avatar

    얼마전에 또 무의식 적으로 총을 겨누었다. 무서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