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있는 젊음

어제는 홍익극 연구회(연극반)이 하는 연극을 보러갔다.

참 멋지고 또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이란.. 그 캐릭터 속에 자신을 던지는 것이란 얼마나 힘든 것일까.
그들은 너무도 ‘멋진 아마추어’답게 잘 해나가고 있었다.

이번주 신문, 이번학기 마지막 홍익 신문에서는 이런 말이 있었다. “예전에는 동아리가 사회문제를 논의하는 공간 이었다”고…

그 동아리가 연극이건, 문학이건, 택견이건, 노래이건, 풍물이건 말이다. 그렇게 그들의 연극은, 문학은, 택견은, 노래는, 그리고 풍물은 사회를 향한 목소리를 낸다는 목적을 지녔다. 그래서 아마 더 강력하고 힘있지 않았을까.
우리과 노래패는 더이상 사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지만 민중가요를 부른다. 그들에게 민중가요란 ‘그들의 존속이 이유이기 때문에 버릴 수 없는’ 그런것이 아닐까.우리과 풍물패는 열심히 풍물을 친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무엇을 보고 싶은건 그 속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생기는 과한 욕심일까.

나는 새내기 시절에 술먹고 웃고 농담을 던지며 무의미 하게 노는 것이 너무도 싫었다. 술먹고 노는것 자체가 싫은 것이아니고, 한순간의 웃음을 위해서 농담 따먹기로 술자리를 보내는 것이 싫었다. 목적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연극반이 연극을 잘 하기 위해서는 연극의 목적이 있어야 겠지.
그들이 연극을 잘 할 수 있던 것은 그들의 목적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노래패가 노래를 잘 하기 위해서는 노래속에 그들의 목적이 들있어야 한다.
이별을 겪은 사람이 이별노래를 더 진심으로 부를 수 있는 것 같이 말이다.
풍물패도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수많은 이유들 중에서 더 자신에게 어울리는 목적을 찾아야 하는게 아닐까.
그 목적이 무엇이던 간에 ‘왜 풍물을 하는가’ 에 대한 답 말이다.
그 목적이 꼭 받드시 사회에 대한 반미라거나 과거 소위 운동권이라고 하는 그런 내용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이슈가 어떠한 것이든 끊임없는 문제제기, 그리고 그 문제들에 대한 자기들의 생각이 , 그런 것들을 개선하고자 하는 목적이 필요하다.

그런 목적은 청춘을 아름답게 하고, 자신이 하는 일을 진심으로 하게 하고,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이끌어 나아가는데 힘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