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가 소천 하시었다.
‘외’ 할아버지가 할아버지보다 멀 이유는 하나도 없지만 멀게 느껴지는 것은, 친가는 제사때마다 모여서 자주 보지만 외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집이 멀지 않아 더 자주 찾아뵈었어야 했지만 그러지못해 아쉽지만, 그래도 종종 찾아뵈어서 그렇게 멀지는 않게 느껴진 외할아버지. 외할아버지는 정구(요즘말로 테니스) 스포-츠 맨이셨으며 역사선생님으로 교직에 계신 교육자셨고, 바둑 매니아 이셨으며 시를 짓기를 좋아하는 문학소년 이셨다.
개인 출판으로 출판하신 약 400쪽 가량의 책 석계집 이라는 문집에는 많은 시와 개인 역사에 대한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책을 쓰신것은 12년 전인 2005년 이었는데 그때는 안읽다가 돌아가신 후에 읽어보게 되었는데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았다. 6.25때 대학교를 다니시느라고 중간에 피난을 가신일, 교사로 재직 하셨던 학교 이름과 짧은 에피스드들 등.
석계집 116p 26번, 28번
평생 조선일보 애독자 이셨으며 한자를 좋아하셨기에 조선일보에서 잘못된 한자가 있으면 여러번 알려주시어서 조선일보에서 감사패를 받으셨다. 일본에서 한인 학교에서 근무하신 계기로 일본어에 능통하시고 2남2녀라는 그 시절 이상적인 숫자의 자녀를 낳아 훌륭하게 키우셨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외할아버지의 유우-머 감각이다. 손자,손녀들이 참석하는 자리에서 언제나 건배사를 하시며 가족의 안녕과 행복을 축하하고 또 기원 하셨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6만5천7백 번의 식사를 차려주신 외할머니에 대한 고마움의 자리 였다. (6만5천7백 끼의 밥을 얻어먹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