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m과 함께한 시간들을 올해 1월로 마무리하고, 다른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Realm에서 어떻게 일하게 되셨나요?”는 제가 종종 듣는 질문입니다. 입사는 제가 예전에 다니던 KTH에서의 인연으로 시작되었습니다. KTH에서 알게 된 오픈소스 회사와 업무적으로 연락을 하면서 친해진 미국 친구와 개인적으로 친구로 지내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Realm에서 일하게 되면서 같이 일하자고 제안해서 Realm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인모비라는 외국계 모바일 광고회사에서 만족하며 일을 하고 있었는데 제안도 지속적해서 오는 데다가 SQLite를 실질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멋진 제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Realm과 같이하게 되었죠.
무엇을 했나
커리어가 자라면서 시니어가 되면 누가 일을 시키지 않습니다. 이제는 정말 나를 관리해주는 사람이 있던 시기가 그립습니다. 사원일 때도 그랬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꽤 지난 지금도 언제나 직장 상사에게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하고 묻습니다. 하지만 시니어가 되어갈수록 돌아오는 답변은 점점 모호해져갑니다.
Realm에서도 저 질문을 계속 던졌지만 세세한 업무 지시는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어떻게 하는지를 잘 아는 사람은 저였으니까요. 회사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은 다 했습니다. 코딩에서 글쓰기 개발자 행사, 콘텐츠 생성, 트러블슈팅, 홍보, 세일즈 등등. 물론 코딩은 좋아하지만 여러가지 일을 해야 하는 환경에서 제한된 시간내에 잘 하기는 힘들었습니다만 하려고 노력은 했습니다. 한국에서 같이하게 된 동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여러가지 역할을 하게되면 결국은 “지금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하지? 무엇이 우선순위 이지?” 라는 질문에 매일매일 맞닥뜨리게 됩니다. 일하는게 힘들지는 않았지만 그 질문에 답을 찾는게 쉽지 않았던 기억이네요. 결국은 방황하다 페이스북을 켜는 불상사도 많았습니다. 핸드폰에서 페이스북, 트위터 앱을 지운 것도 여러번이고 소셜사이트 blocking 소프트웨어도 사용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뒤돌아 Realm에서 일을 한 것들을 보면 이것 저것 참 많이 했다라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순간순간 최선을 다 했는지에 대해서 아쉬움도 많이 남습니다.
결국 수많은 콘텐츠 (번역 콘텐츠, 자체 콘텐츠, 비디오 콘텐츠), 소셜 활동, 11번의 Realm 사용자모임, 다양한 개발자 콘퍼런스 후원/운영, 여기저기 콘퍼런스 발표, 테크 미디어 노출, 기술지원, 세일즈 등등의 흔적이 남았네요. 한국의 많은 모바일 개발자들이 Realm을 알고있고, 좋아하고, 실제 앱 개발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리모트로 일하기
Realm 근무에서 리모트라는 점을 빼놓을 수 없죠. 한국에서는 혼자서 시작하다보니 리모트로 근무를 했습니다. 물론 제가 일하는 시간/장소를 아무도 구속하지 않았습니다. 회사 정책상 휴가도 무제한이죠. 그런데 저는 저 자신을 통제할 자신이 없어서 리모트가 싫었습니다. Realm에서 일하는 건 좋지만 리모트는 싫었어요. 관련해서 리모트 관련해서 글 어떤 원격근무 직장인의 고민 도 남기고, 블로터 인터뷰 “회사는 미국 스타트업, 근무는 한국” 도 했습니다. NDC 에서 원격근무 개발자의 자기관리 -우리는 모두 원격근무자다라는 제목으로 발표도 했네요.
할일 정하기: 리모트로 일한다는 건, 어찌 보면 돈이 꼬박꼬박 들어오는 개인사업과 같습니다. 회사에서 나에게 원하는 바는 있지만, 시간대의 차이와 커뮤니케이션의 한계로 마이크로매니징은 불가능하죠. 또한 본사에서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결국 제가 속한 팀의 목표를 인지한 상태에서 그걸 이루는 방법을 직접 선택하고 제 시간이라는 자원을 직접 잘 배분하는 방법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일과 삶의 분리: 리모트로 일하며 일과 삶을 분리하려고 했지만 힘든 일이었습니다. 업무용 노트북과 개인 노트북을 두 개를 가지고 다니다가 포기하고 하나로 합쳤습니다. 또한 시간대의 차이가 있어서 종종 늦은 저녁이나 새벽에 일을 처리해주어야 훨씬 제 일이 빨리 진행됩니다. 그렇다 보니 일과 삶의 일체화를 이루어버렸습니다. 저는 언제나 일하고 있고, 또 언제나 놀고 있었습니다. 일과 삶의 구분을 위해서 저는 집이아닌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나마 일과 삶을 분리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휴식: 또 쉴 때는 쉬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있다보니 쉽지는 않기에 의식적으로 쉬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리모트이다보니 휴가쓰기가 더 민망합니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휴가를 15일 이상 쓴거 같지는 않아요.
무엇을 배웠나
Realm은 잘나가는 오픈소스입니다. 별도 많이 받았습니다. Github와 스택오버플로우, 오프라인 모임 등을 통해 수없이 많은 의견을 수집하고 제품 방향을 결정해서 이룬 성과입니다. 물론 코딩과 기술력이 기본이지만, 그 외적인 부분인 개발자 커뮤니케이션, 개발자 마케팅, 문서화, 오픈소스 정책관리 등 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기에 실제 시장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오픈소스: Realm과 함께하면서 오픈소스 기반 회사에서 생기는 이슈, 노하우, 고민 등에 대해서 많이 경험하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특히 오픈소스의 성공사례, 거버넌스,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서 많이 읽고 또 Realm에서의 경험과 비교해볼 수 있었습니다. 오픈소스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서는 발표한 자료도 있기는 한데 조금 더 정리해서 공개하고자 합니다. 언젠가는요.
문화: Realm의 창업자 두 명은 덴마크 코펜하겐 출신입니다. 하지만 헤드쿼터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이고 창업자 둘다 미국에 살고있지요. 코펜하겐에도 엔지니어링 오피스가 있어서 덴마크 문화가 가미된 미국 문화가 Realm의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위치상 샌프란시스코에 있기때문에 다양한 스타트업 출신들이 쓰던 도구, 문화, 프로세스에 대해서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도구들과 마케팅, 세일즈: 마케팅과 세일즈 관련 일을 하면서 다양한 마케팅 도구와 세일즈 도구를 써본것도 재미있었습니다. Mixpanel 이나 Google Analytics, MailChimp는 물론이고요. 가장 놀라웠던 건 마케팅 자동화 도구인 Pardot과 세일즈 플랫폼인 SalesForce 입니다. 정말 생각하는 모든 자동화가 가능하고 시각화 할 수 있고 계측과 예측이 되는 것이 너무 멋졌습니다. 아직은 우리나라는 마케팅이나 세일즈 도구가 발달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한국에서도 이런 도구들이 더 많이 사용되겠지요.
이루지 못한 것들
더 많은 코딩: 코딩을 하고 싶었습니다. 정말요. 그런데 문제는 제가 코딩을 좋아만 하고 그렇게 잘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대학원을 다니면서 과제를 하느라고 코딩이 다시 손에 익었습니다. 하지만 Realm에서 회사와 관련된 코딩을 할 기회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네요. 제 게으름과 의지부족이 더 큰 원인이기는 합니다만 개발은 환경구축/유지와 초기 각 개발환경의 API와 환경에 익숙해 지기까지 학습 비용이 높은 편입니다. 그래서 제한된 시간에 무엇인가 만들어 내기에는 힘들었다고 생각합니다만 핑계일 뿐이죠.
성공적인 영업: 직장인으로서 가장 좋은 경험은 제품을 성공시키는 과정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성공의 방정식은 책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뼈에 새겨지는 것이죠. 다양한 ‘성공’의 경험을 겪으면 그것이 일어나는 과정을 이해하게 됩니다. 성공의 증거는 세일즈의 성공입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한국에서의 세일즈는 아직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저는 같이하지는 못하지만 Realm 미국에서의 세일즈는 성장 중이니 기대가 됩니다.
오픈소스 제품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서 RethinkDB가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글 RethinkDB: why we failed를 추천해 드립니다.
긴밀한 소통: 리모트라는 한계 때문에 미국, 덴마크에 있던 동료들과 더 많은 소통을 하지 못한 점이 아쉽네요. 미국 샌프란시스코나 덴마크 코펜하겐 출장에서 만나기도 하고 했지만 떨어져 있는 느낌은 언제나 아쉽습니다. 이 점은 바로 전 회사인 인모비에서도 느낀점 인데요. 외국계회사의 지사나 리모트로 일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느끼는 한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시아에 있는 직원들과는 매주 온라인으로 미팅을 주관했는데 그 점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Realm, Next
Realm Database는 꾸준히 잘 성장하고 있습니다. 치열한 서버용 데이터베이스 시장보다 SQLite와 같은 데몬이 필요없는 클라이언트 전용 작은 데이터베이스 시장은 블루오션 이기도 하고 최근에 유행했던 피터 틸의 “제로투원”에서 말한 방향에 알맞은 사업영역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Realm은 빠르게 성장하는 오픈소스로서 SQLite가 모바일에서 지원하지 못했던 다양한 기능들을 훌륭하게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입사 당시에는 그나마 기능이 많이 부족했지만 지금은 충분히 성숙했죠.
Realm Database간에 동기화와 서버쪽 관리를 제공하는 Realm Platform은 더 쉬운 접근성을 위해서 Realm Cloud라는 새로운 제품을 발표하고 지금 베타 사용자를 받고 있습니다. 클라우드 제품이라는 새로운 도전이 성공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Next Step
Realm에서 2015년 6월에 일하기 시작했으니 벌써 2년 8개월 일을 했네요. 다음에 같이하게 될 회사는 이미 정해졌고 아마 다음 글과 함께 인사드리려고 합니다. 쭉쭉 성장하고 있고 도전하고있는 회사라서 열심히 일해보고 싶고 기대가 됩니다.
열정과 욕심과 게으름과 만남과 이별과 노력과 재미와 신기함과 배움과 기대와 실망 등이 뒤섞인 Realm에서의 경험들을 모두다 글에 적기에는 힘들지만 Realm에서 일한 것은 “재미있는 도전”이었습니다. 저를 도와주시고 함께했던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