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콘 한국 2017 : 의장 후기

이 글은 “파이콘 의장 후기” 이고 “파이콘 후기”는 별도로 적으려고 정리중 입니다.

2015년부터 파이콘 한국 준비위원회로 활동하고있다. 2014년에 시작한 파이콘 한국은 매년 발전하여 규모는 물론이고 프로그램의 다양성, 행사의 성숙도 면에서 한국의 기술 커뮤니티에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있는 행사로 자리잡았다.

파이콘 한국 2017년 의장이 되었다

파이콘 한국 2017에 준비위원회에서 의장으로써 다른 멋진 분들과 거의 1년동안 준비했다. 기록을 찾아보니 파이콘 APAC 2016이 8월 13~15일 이었는데 8월 27일에 회고를 진행했고 그 자리에서 random 으로 다음해 의장을 뽑았는데 내가 뽑혔다. 개인적으로는 회고에 있던 사람중에 랜덤으로 회장을 뽑는다는 조금은 갑작스러운 분위기에 “설마? 설마?” 이러다가 정말 그렇게 당첨 되었다.

이 세상 수많은 조직에는 “회장” “의장”이 필요한데 생각보다 그렇게 인기있는 자리는 아니다. 부담스러운 자리임에 틀림없다. 대부분 조직에서 “투표”라는 과정을 통해서 리더를 선출 하므로서 리더는 정당성을 인정받고 그 역할을 하는데 필요한 힘이 생기게 된다. 랜덤신의 축복으로 선출된 나는 Numpy(random 함수가 있는 라이브러리 이름)의 권위에 기대며 시작했다. 선출의 과정이 즉흥적이어서 마음의 준비나 예상도 전혀 못하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의장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준비위원회 분들이 잘 도와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내가 준비하면서 해 보고싶었던 것들이 있었기때문이었다. 랜덤 선출은 재미있고 긴장되고 힙한 방법이지만 최선의 방법인지는 아직도 의구심이 남는다. 그래도 다음 의장도 랜덤?  ㅋㅋㅋㅋㅋ

그후 8월 30일에는 내부 커뮤니케이션 도구인 Slack에서 장소선정을 비롯한 다양한 주제에 대한 대화가 오갔는데 그 대화 이후 내가 하고싶은 의장역할에 대해서 정리해서 구글문서로 남긴것이 “PyCon KR 2017 에 대하여” 이다. 이 문서는 준비위원회 내부적으로 공유했던 글인데 이제 1년이 되어 전체 공유해본다. 위 글에는 내가 어떤일을 하고 싶었는지가 정리되어있다. 내가 파이콘을 준비하면서 불편했던 점을 개선하고자 하는 부분도있고 내가 생각해본 방향으로 발전시켜고보고 싶다는 내 생각을 정리했다.

의장의 역할

의장의 단어의 사전적인 뜻은 “회의를 주재하고 그 회의의 집행부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의장의 역할은 회의의 아젠다를 정리하고 논의 과정에서 충돌이 나는 부분을 중재하고 또한 다양한 사람들의 역할을 조정하는 것도 있겠다. 대부분의 논의에서 나는 “결론”이 어떻게 나는지에는 관여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노력했다”라고 표현한건 노력만 하고 실제로는 ㅠㅜ) 대부분은 그 일을 맡은 분들이 이슈를 제일 잘 알고있고 또 그분들이 직접 낸 결론이어야만 납득하고 더 잘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같은 비영리 조직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조직마다 차이가 있을수 있지만 내가 봐온 바로는 많은 조직에서 리더는 대외적으로 조직을 대표하고 부리더는 조직 내부적인 다양한 일들을 리드하고 관리한다. 리더와 부리더는 어떤일이 필요한지를 미리 준비, 계획하고 다양한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아젠다를 설정한다. 조직 내부적인 이슈를 파악하고 디테일을 파악하고 조정한다. 올해는 파이콘 한국 준비위원회에서 아이언맨의 갑옷이자, 캡틴아메리카의 방패이자 토루의 망치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하시는 예지님이 도와주셔서 무난히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이 좋은 의장일까

의장은 비전이 있고 그 비전을 구성원들과 함께 이끌어 나아갈 수 있는 신망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동안 파이콘 한국/APAC이 성공적으로 열릴 수 있었던 것은 배권한 의장님의 비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비전은 “한국에서 파이콘 커뮤니티 활성화” 였고 그 비전을 이루기위한 하나의 목표가 “한국에서 파이콘 APAC 개최” 였다. 그 비전과 목표를 이루기 위한 사람을 모으고 2014년에 첫 파이콘 행사를 시작하였고 2015년에는 APAC을 열기위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정도로 발전 시켰고 2016년에는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1,500명 이상이 참가하는 APAC 행사를 만들어냈다. 나는 2016년 파이콘 APAC을 같이 준비하면서 코엑스 그랜드볼룸을 대관하는 것을 보며 너무 위험한 모험 아닌가, 이거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장소인가 라는 걱정을 많이 했지만 그가 결정하고 나머지는 그의 비전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채워나갔다. 나같이 간이 콩알만한 사람은 감히 따라할 수 없는 대담함과 실행력이다.

내가 의장이되고나서 의문을 가졌다. 내가 하고싶었던 것들을 우리 준비위원회가 공유할 수 있는가? 내가 우리 중에서 얼마나 신뢰를 받는 사람인가? 이런 ‘목표의 공유’와 ‘신뢰를 획득하는 과정’은 대부분 일반적인 선거의 과정, 즉 공약을 발표하고 투표를 거치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 지는데 그런것은 없었는데 우리는 어떤 목표를 공유할 수 있을까? 일단 모두가 합의한 Numpy random.choice 의 권위를 등에 업고있으니 뭐 “신뢰” 부분은 넘어가고 내가 생각한 “목표”를 생각해보고 공유하기위해 정리한 것이 위 구글 Docs 문서다. 저 문서가 얼마나 읽히고 공감을 얻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 자신이 무엇을 하고싶은지에 대한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보통 조직에서 시기에따라 “목표”는 계속 변하지만 “비전”은 변하지 않는다. 파이콘 한국 준비위원회가 존재하는 이상 “한국 파이썬 커뮤니티 활성화” 라는 비전은 변할일이 없을 것이다. 다만 그해마다의 목표는 의장이나 구성원들 상황이 바뀌면서 계속 논의와 합의의 과정을 거치면서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의장은 그런 과정들을 잘 이끌어나가며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시도하자고 이끌었으면 좋겠다. 같은 행사를 더 완성도 높게 하는 것이 목표라면 행사 대행하는 업체에 맡기지 뭐하러 직접 하겠는가.

마지막으로 모든 구성원과 두루두루 친한사람이면 좋겠다. 주위에서 조직이 여러그룹으로 나뉘어서 따로 놀다가 깨지는 모습을 종종 보곤한다.

비영리 컨퍼런스의 운영

최근 몇년, 어쩌다보니 파이콘을 포함한 다양한 컨퍼런스, 세미나를 준비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파이콘 한국 준비위원회와 같이 흩어져서 다양한 구성원들이 파트타임으로 일 할 때에는 완벽하게 통일된 하나의 대오를 이루어 의견 통일을 확인하며 일을 하기는 힘들다. 일이 보이면 먼저 나서서 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 일을 실행 한사람의 결정과 방향이 존중되어야 한다. 예를들면 우리 Git저장소에 브랜치 관리 방법을 누가 정해야 하나? 코딩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 하자고 하는 방식이 먼저 존중되어야 한다. 자주 만나서 회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누구도 이 조직에서 더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다. 다른 사람이 일을 하면서 내린 선택이 마음에 안들것 같으면 직접했어야 맞다. 물론 의장이라고 결정릴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아젠다를 제시하고 같이 가자고 공감대를 구하며 설득할 뿐이다.

각 일의 히스토리를 알아야 일을 할 수 있다는 제약 때문에 일이 소수의 인원에게 쏠리곤 한다. 다른 구성원이 조금 시간을 내서 일을 하고 싶어도 자신이 그 일을 하는 것이 맞는지, 히스토리는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인지, 이미 누가 하고있는 것을 중복으로 하는게 아닌지 등을 파악하다보면 실제 일을 할 기회가 없다. 그래서 특정 소수에게 일이 집중되고 하드캐리와 번아웃이 발생한다. 그런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더 나은 업무관리 도구나 이슈트래킹 시스템을 도입하고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잘 정리되어있어야 한다. 많은 경험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2017년 파이콘 한국을 함께하며

이지고잉 파이콘 : 지난 2016년 APAC행사가 끝나고 회고에서 자주 나왔던 단어가 “하드캐리”에 대한 것이었다. 행사의 다양한 일들은 미리 준비하기 힘들기에 막판에 누군가가 희생하다시피 일을 많이하는 일이 생긴다. 올해에는 2017년에 새로 들어온 준비위원회분들도 15명이나 되기에 일을 잘 분배하려는 노력을 한다면 “이지고잉” 한 파이콘 준비가 될 것이라 기대했다. 물론 이번 행사준비도 미리미리 완벽히 이지고잉 진행되지는 않았고 하드캐리와 빵꾸와 번아웃이 발행했지만, 올해는 많은 분들이 조금더 미리미리 행사를 준비했고 더 많은 분들이 준비과정에 참여했다.

더 나은 도구의 활용: 우리 준비위원회는 구글 Suite(gmail, Google Drive, 등)와 Slack을 매우 잘 활용하는 편이다. 주로 떨어져서 각각 일하기 때문에 도구의 선택과 활용은 매우 중요하다. 올해는 할일 목록을 구글 시트에 만들고 담당자와 마감일을 적어서 관리했다. 또 Python으로 만든 봇이 정기적으로 돌면서 마감일이 다가왔을때 담당자에게 Slack으로 알려주도록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일이 더 시각적으로 한눈에 보이는 Trello를 활용했으면 어떨까 생각이 든다. Trello도 API가 있고 Python SDK도 있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되었다.

또 외부 스폰서, 스피커 등의 소통과 다양한 질문을 위해서 이메일을 운용 하는데, 너무 많은 이메일이 와서 많은 사람을 힘들게 만들었다. 또한 그 이메일이 처리가 잘 되었는지도 메일 만으로는 관리가 힘드니 zendesk 류의 대표메일 관리하는 서비스를 활용했으면 어떨까 생각이 든다.

커뮤니케이션 정리: 커뮤니케이션은 힘들다. 특히 우리같이 온라인 소통을 해야 하는 조직은 제대로된 채널로 정제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비용도 줄어들고 일이 진행이 된다. 한편 커뮤니케이션은 질도 중요하지만 양도 중요한데 규칙을 만들기 시작하고 규제가 많아지면 커뮤니케이션의 양이 줄어든다. 우리는 여기서 즐기면서 웃으며 행사 준비과정을 즐기기를 원하지 딱딱한 컨퍼런스 준비회사 다니는 것은 아니다. 너무 딱딱하지도 않지만 규칙은 지키는 좋은 문화가 필요하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비교적 잘 정리된 Slack 문화를 가지고있다. 그중 큰 부분은 잘 관리되고있는 채널 문화다.

  • #general 은 공지사항 처럼 모든 구성원이 알아야 하는 내용만
  • 농담은 #random 에서
  • 각 주제별로 채널 분리

작년까지는 내가 제일 힘들었던 부분이 슬랙 채널의 분류가 모호하다는 점(일 관련 대화와 농담 대화가 섞여있다는 점)이었는데, 올해는 채널운영이 꽤 깔끔하게 되었다. 물론 가장 활성화된 채널은 #random 이다 ㅋㅋㅋ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파이콘 한국 준비위원회와 같은 조직에 새로 들어와서 적응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새로오신 분들에게는 더 많은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고 그래야 조직이 계속 성장하고 살아있는 조직으로서 유지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새로오신 분들이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 드리려는 작은 시도들을 많이 했다. 결과적으로 적응하는데 도움이 되어서 고마웠다는 이야기도 듣고, 새로오신 분들에 대한 도움이 부족하지 않았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내가 한 행동은 하나인데 이렇게 두가지 상반된 반응을 듣게 된다니 🙂

개인적으로는 준비과정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많은 일을 하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바람직하다. 올해에도 다양한 이유로 많이 참여하지는 못한 분들, 주로 온라인에서만 함께하신 분들이 계신데 혹시나 미안함 마음가지실 필요가 없고 중요한 역할을 해주셨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정기적인 회의: 올해는 13번의 오프라인 회의를 했다. 기본적으로 한달에 한번 정기회의를 하고, 마지막 달에는 주간으로 회의를 했다. 우리 모임같은 것을 하면서 정기적인 회의를 하는 것은 꾸준히 리듬을 만들어내고 생각을 공유하는데 도움이 된다. 올해는 레진엔터테인먼트에서 회의실을 많이 지원해 주어서 안정적인 회의 운영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매 회의마다 아젠다 문서를 만들고 누구나 논의거리를 추가하고 회의에서 이야기하는 방식을 만들려고 노력했는데 이제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되었다.

더 나은 파이콘: 작년에는 없었던 신규 프로젝트가 3가지가 있었는데 영코더, 아이돌봄, 등록데스크 개선이 그것이다. 프로젝트 진행은 전적으로 담당하신 분들이 직접 해주셨지만 논의과정에 꾸준히 참석하고 프로젝트가 끊기지 않도록 도와드리려 노력했다. 크고 작은 아쉬운 점이 없기야 하겠냐만 담당하신 분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모두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조은님이 라이트닝토크에서 아이돌봄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크게 공감했다고 한다.

오프닝과 클로징

오프닝 20분, 클로징 5분.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지만 파이콘 한국의 오프닝과 클로징을 한다는 것은 커다란 영광이다. 배권한님의 지난 파이콘 한국 오프닝과 파이콘 US의 오프닝, 클로징을 참조했다. 오프닝은 다양한 프로그램과 그 배경을 설명하려던 욕심에 조금은 길어졌지만 무난하게 끝났다. 클로징도 다양한 파이콘 구성원들에 대해 박수로 감사를 표현하며 잘 마무리 되었다.

정리

행사가 끝나면 다양한 감정들이 다가온다. 나도 행사를 자신있게 준비할 때도 있었지만 마무리되는 후반에는 “잘 한걸까?” “폐만 끼친건 아닐까?” “상처받은 사람은 없을까”라는 생각에 움츠려들기도 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럴 필요 없다. 모두가 잘했다. 멋진 행사를 만들어 냈다. 우리가 가만히 있었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을 이렇게 1,800 명이 즐기고 어우러지는 행사를 만들어냈다. 우리 모두가 어깨를 펴고 자랑스러워할 일이다. 즐거워 춤을 출 일이다.

파이콘 한국이 참석자 모두에게 즐거운 행사, 신나는 파티가 되려면 준비위원회가 준비하는 과정이 즐겁고 신나야 한다. 하지만 행사 준비를 ‘일’로 받아들이면서 너무 다그치고 재미없는 과정으로 만들지 않았나 반성하게된다. 행사 준비과정에서 다양한 실수가 노출되었지만 그런 실수들 보다 걱정되는 점은 “준비 과정이 재미없었으면 어쩌나” 하는 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끊임없이 구박받으면서도 꿋꿋이 팀내에서 아재개그를 담당하고 있는 성수님과 현도님께 격려와 감사를 전한다. 내년에는 더 많은 도전을하고 더 큰 실수를 하는, 더 재미있는 파이콘 한국 준비위원회가 되길 바란다. 부족한 나를 믿어주고 같이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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