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는 비법에 대하여

“경제대통령 이명박” 사람들은 더 잘 살기위해 경제대통령을 원하고 경제대통령 이미지는 이명박의 가장 큰 무기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무엇을 ‘잘산다’라고 정의하고 있는걸까? GDP가 올라가면 TV에서 말하는 국민소득 2만불을 넘어 3만불시대가 오면 우리는 더 잘살게 되는 것일까? 나는 그런 숫자들에 회의적이다. 우리의 GDP는 거의 2만불이 되는 수준에 이르렀지만 우리는 더 행복해지지 못하고있고, 인간관계는 더 건조해져 가고있다. 이웃들의 이름도 모르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에는 우리는 너무 바빠졌다. 인터넷과 핸드폰으로 인해 커뮤니케이션은 과거에 비해 너무도 편해졌지만, 사람과 사람의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은 수단이 진보 할 수록 후퇴하는 느낌이다.

나는 기술의 발전이 싫다. 딱 지금 수준으로 동결시켜 버렸으면 하는 바램이다. 컴퓨터도 이정도 빠르면 됐고, 핸폰기능도 이정도면 충분하다. 전 인류가 10년동안만 기술발전을 멈추고, 기술 발전이 진행된 과거와 앞으로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천천히 생각했으면 좋겠다. 또 지금 기술수준에 적합한 법과 제도를 만드는 일도 필요하겠다. 이번 UCC선거 금지에 대한 법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법과 사회시스템은 기술 발전의 속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있다.

폴 라파르그의 ‘게으를 수 있는 권리’라는 책을 읽고 있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생산하고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서 노력하기 보다는, 그 시간에 휴식을 하고 적게 소비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끊임없이, 수많은 미디어들에 의해 소비를 강요당하고, 무엇인가를 계속 사고, 소비하는 이 쳇바퀴는 계속 빨라지고 커지기만 할 뿐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소비를 해야하는 의무’를 강요받으며 우리의 ‘게으를 수 있는 권리’는 그런 권리가 존재하는지도 아무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취업시즌에 대한민국 대학생 4학년 2학기인 나는,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것인지, 우리 사회, 우리 직장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다운 쉬프트, 네스팅, 샐러던트“를 주장하지만 그냥 무조건 ‘일하기 싫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그 근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숫자로 대변되는 숫자를 올리는데 집착하기에는,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기에도 너무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