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도 나도 부자는 아니다. 그렇다고 찢어지게 가난하지는 않다. 하여튼 나는 우리 부모님이 얼마나 부자던, 이상하게 부모님돈을 쓴는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내가 되는한은 내가 알아서 벌어서 쓰는 편이다. 자, 내가 무슨 엄청난 능력이 있는것도 아니고 졸업장도 없고, 돈 벌어봐야 컴퓨터로 깔짝거리는 일이니 내가 벌어서 부자일 리가 없다.
나는 그래서 가난하다. 돈이 없어서 허덕이는 가난은 아니되, 다만 부자가 아닌 가난이다. 학생이 가난하지 않으면 학생스럽지 않은 것이다. 가난은 부끄러운것이 아닌것이다. 또 절약하는 것은 기쁜것이다. 돈쓰는 기쁨이 있지만, 쓰지 않을 돈을 쓰지 않는 것은 또 다른 기쁨이다.
캐나다에서 돈을 사용하다 보면, 가끔 순식간에 돈이 물쓰듯이 나간다. 어제 스키를 가서 쓴돈은 $105(리프트+렌탈) + $26(차렌트) + $16(저녁) + $40(장갑구입) + $20(기타비용) = $207 = 약 18만원. 그렇다 그렇게 엄청나게 큰돈은 아니다. 하지만 작은돈도 아니다. 한국에서라면 돈을 그렇게 쓰지는 않았겠지, 돈이 없어서가 아닌, 다만 나중에 더 나은 곳을 위해 돈을 사용하기 위해서.
나의 가난은
– 천상병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서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이 시에서 처럼 가난이 직업이 되면, 작은것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어느날 사치스러운 콜라 한캔의 즐거움, 오랜만의 비싼 스타벅스 커피의 즐거움, 안주로 매일 제일싼 참치김치 찌개만 시키다가 2천원 더비싼 알탕을 시켰을때의 즐거움. 그 작은 즐거움은 절제된 생활 안에서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절제를 잃는 나는, 돈쓰는 즐거움에 싫증이 나고 그 예전의 즐거움이 그리웁다.
어느 가난한 연인과 매일 학교에서 제일싼 밥을 먹고, 가끔 학교앞 피자집에서 9,900원짜리 피자를 시켜먹으면(그 가게 아직도 있나? 99피자 ㅋㅋ) 그리고 거기에 사치스럽게도 샐러드와 콜라를 더한다면, 그속에서 커다란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그런 하루를 보내고 싶다.
어느 추운 겨울날, 그 연인과의 데이트는 자가용을 끌고 뮤지컬을 보고 멋진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후, 차로 돌아가는 길 춥다는 그녀의 말에 히터를 틀어주고 집앞에 내려주는 것도 멋있다. 하지만 지하철을 타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근처 식당에서 저녁식사후, 돌아가는 길 버스기다리다 춥다는 그녀의 말에 손을 한번 더 꼭 잡아주는 그 연인들이 가난할 지언정 더 아름다우리라. 그들이 더 행복하리라.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 노래’가 생각이 나는군요! 가난한 자는 부자인 자에게만 가난한 것이지요. 상투적인 이야기이지만 행복을 느끼는 방법을 안 다면 결코 가난이 살아가는데 방해가 되진 않을것 같습니다.
99피자 생각난다~
정말 그땐 가난했었는데 ㅋㅋ 가난했었지?
홈피실로 시켜먹던 그 피자도 못 잊겠는걸~
딱 그만큼만..
더 가난해지고 싶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