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통사람을 보고 – 좋은나라, 전경, 기자에 대해

영화 ‘보통 사람‘을 관람했다. 나는 영화를 오락으로서 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정치적 배경이 짙게 깔린 가슴 아픈 현대사 영화를 찾아서 보는 편은 아니다. 하여튼 어쩌다보니 봤다. 전반부는 조금 지루했으나 뒤로 갈수록 재미있었다. 이 생각 저 생각이 들어 정리해 본다.

1. 투명하지 않은 나라,  법과 현실이 동떨어진 나라

좋은 나라란 무엇일까? 얼마전에 유시민이 ‘차이나는 클래스’에서도 좋은나라를 정의했는데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열심히 하면 대충 그거에 맞는 합리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나라” 였다.

얼마 전에 중국에 가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중국은 투명하지가 않다.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누가 어떤 규칙에 의해 처벌받는지, 정부 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등이 투명하지 않다. 또 법과 현실이 동떨어져있다. 세금을 법대로 내고 회사를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우리나라도 그렇고 어느 나라나 법과 현실은 괴리가 이지만 중국은 그게 심하다. 이런나라에는 불법과 꼼수가 판을 치고 학맥, 지연 등을 통한 관계가 중요하다. 착하고 빽없는 사람은 살기 힘든나라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80년대 5공화국 후반부 (정확히는 1987년) 우리나라도 역시 그랬다. 불투명한 것은 물론 지금보다 법과 현실의 괴리가 심했을 것이다.

나는 좋은 나라의 조건으로 투명성과 이 법과 현실의 거리가 좁은 나라를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정부는 물론 시민단체와 다양한 구성원들이 노력해야 한다. 법과 현실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법도 사회 현실에 맞추어 발전해야 하고, 사회 구성원의 인식도 나아져야 한다.

1987년으로부터 30년이 지났다. 그때보다 2017년의 우리는 확실히 나아졌다. 다행이다.

PS.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화이팅~!

2. 전경의 기억

나는 87년도처럼 치열한 때에 학교를 다니지는 않았다. 아마 내가 학교에 다니던 99년도는 학교앞에서 전경을 볼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학교 다닐 시절 전경의 추억이 새삼 떠올랐다.

99년도는 96년도 연세대 사태의 영향으로 정부에서 열심히 한총련을 잡아가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아마도 대학교에서 거의 없어진 운동권이 살아있던 시기다. 학교에는 다양한 NL계열 동아리, 학회 등이 있었고 PD계열 모임도 많이 있었다. 누가 학생회 선거에서 이기느냐에 따라서 농활을 어디로 가느냐도 달라졌는데 나는 1학년 때는 PD농활을 가서 오리농사 짓는 생태농활인가?를 했었고, 2학년 때는 NL농활(한총련 농활)을 갔었는데 거기서의 대학교 2학년 꼬꼬마시절에 통일과 반미투쟁같은 용어들이 새롭고 무섭고 무겁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아마 서총련 의장이 우리 학교 총학생회장이었나 그랬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정문앞에는 전경들이 주루루룩 서서 모든 학생들의 학생증을 검사하고 있었다. 때로는 가방을 보여달라고 한다. 선배들에게 배우기로 그런 것은 일명 “불심검문” 이다.

불법이므로 거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나를 포함한) 학생들은 전경이 물어보기도 전에 학생증을 보여주고 지나간다. 가방을 보여달라고 하면 열어 보여준다. 고분고분하게 행동하면 99% 패스. 우리 대부분은 불의를 알면서도 나의 편의를 위해서 그냥 무릎을 꿇는다. 다만 몇몇 용기 있는 선배들은 학생증이 있어도 보여주는 것을 거부하고 전경들에게 따진다. 불심검문에 항의하면 그 전경 뒤쪽에 있는 높은 전경아저씨에게 인도된다. 그러면 또 그 아저씨랑 논쟁을 해야 한다. 물론 그 선배는 학생증을 가지고있지만 불의에 따지는 것이다. 이 과정은 꽤 오래걸릴 뿐 아니라 전경은 무섭다.

이렇게 나라가 법을 살짝 애매하게 어겨가면서 공권력을 사용해 사람을 겁주는 일이 많이 있다. 살짝 비굴해지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그런것들 말이다. 7,80년대에는 그런일이 아주 많았을 것이고 이제는 많이 줄었겠지만 아직도 있을 것이다. 이때 우리는 그 부당함에 맞서고 항의해야 한다. 대학교 꼬꼬마시절에 나는 그렇지 못했다. 비굴하게 학생증을 먼저 내밀었다.

‘보통 사람’에도 나오는 장면이 있다. 전경들이 합을 맞추어서 동시에 방패로 땅을 치는 장면이다. 나도 내 바로앞에서 전경이 방패로 바닥을 팡팡 치는 것을 본적이 있다. 20명 이상의 전경이 일치되어서 그런 모습을 보이면 웬만한 보통사람은 겁을 먹는다. 나도 무서웠다.

이 영화에는 그런 잘못된 공권력의 집행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3. 기자.. 란?

최근에 더욱 느끼는 것이지만, 언론이라는 것, 미디어라는 것은 정말 커다란 권력이다. 그리고 그 내용을 채우는 기자들도 대단한 사람들이다. 소명의식이 있는 멋진 기자는 세상을 바꾼다. 87년도에도 그랬고 올해도 그렇다. 이제는 꼭 신문사, 방송사에서 일하지 않다고 왕홍이니 인플루언서니 파워블로거니 하는 사람들로 어느정도 권력이 분산되기는 했다. 하지만 아직도 미디어의 힘, 기자의 힘은 중요하다. 좋은 미디어, 좋은 기자가 많아야 사회에서 좋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더 나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물론 멋진 기자 이야기도 ‘보통사람’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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