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에게 20만원도 힘든데 기본소득 300만원 이라니?

조금 지난 이야기이지만,

박근혜의 “모든 노인들에게 20만원을” 공약이 예산문제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대통령이 사과 하는 마당에 엄청난 외신이 떴었다.

‘모든 성인 월300만원’ 보장법, 스위스 국민투표 부친다 바로 이 기사다. 우리나라는 “노인” 에게만 겨우 “20만원”을 주겠다는 데도 돈이 없다고 하는데 스위스는 “모든” 국민에게 “300만원”을 주겠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무덤에서 마르크스 & 엥겔스가 뛰쳐 나와서 삼바춤을 추는 소리인가? 스위스가 잘 산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넘사벽이었단 말인가?

나는 기본소득 전문가도, 사회주의자나 사회당도 아니지만, 요 이슈에 관심이 좀 있다. 나의 얕은 생각을 정리해보자. 나의 얕디 얕은 지식으로 생각을 정리한 글이니 만큼 틀린 부분이 있으면 고쳐주시면 겸허히 받아드리려고 한다.

우리는 무한경쟁 시대에 살고있다. 이제 “무한 경쟁시대”라는 표현은 너무 진부해서 서태지와 아이들이 가요차트 1등하던 시절에 유행하던 단어인거같긴 같지만, 하여튼 우리는 경쟁이 당연한 시대에 살고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경쟁할 필요가 없다. 인류는 먹고 살 만큼의 의식주를 충분히 생산하고 있다. 다만 생산되는 음식들은 일부 사람들만 너무 과다하게 분배 되고 있고, 엄청난 양의 곡식들이 고기를 위한 동물의 사료들로 사용되고 있느라 한 쪽에서는 굶주리고 있을 뿐이다. 주거 불평등도 마찬가지이다. 결국은 분배의 문제인 것이다.

basic_income

그래서 나온 여러 아이디어 중에 하나가 기본소득 이다. 이 아이디어는 ‘나쁜 사마리아 인들’ 같은 책이 국방부 불온서적으로 지정되고 ‘마르크르 경제학’을 강의하는 교수(강사) 가 대학원생에의해 국정원에 고발 당하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대놓고 논의하기에는 빨갱이로 몰리기 딱 좋은 주제 이지만, 알고보면 유럽에서는 사민당의 세력이 큰 것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역사가 깊은 주제인 듯 하다. 기본소득은 현실에서는 완전고용이 힘들기 때문에 완전고용과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주어진다는 점에서 복지와는 구별된다. 토지세 등을 통해서 재원을 마련하는데, 어디서 말도안되는 소리냐는 분들을 위한 기본소득 30문 30답. 물론 말도 안된다는 주장도 많다. ‘기본소득’ 주장의 허구성 (채만수)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의식주를 해결하기위한 기본소득을 제공하면 어떻게 될까? 지금과는 아주 다른 세상이 될 것이다. 여기서 물뚝심송 님의 덕과 잉여에 관한 글 을 한번 읽어주자. 경쟁에서 도태되면 당장 노숙자로 전락하는 사회라면 먹고사니즘에 치여서 삶을 즐기며 잉여 속에서 (돈이랑은 상관없는!)무엇인가를 창조할 여유도, 과감한 도전과 예술도 발전하지 못한다. 당장 SW업계에 있는 나로서는 ‘기본소득’이 평생 보장된다면 자신의 재미를 위해서, 또 공유를 위해서 수많은 오픈소스 개발자들이 생산될 것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물론 기본소득 보다 더 벌고 싶어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서 수익을 창출할 것이기 때문에 사회 발전을 위한 동기부여도 계속 된다.

물론 기본소득이 가져올 수많은 병폐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기본소득이 작던 크던 도입이 되면 ‘놀고먹는’ 사람들이 늘어갈 것이다. 유명한 사례이지만, 미국의 알래스카에서는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다. 알래스카의 특수사례가 다른 지역에 적용되기는 힘들지만 기본소득이 현실적으로 어떤 장점과 단점을 가지는지 좋은 실례로 많이 언급되고는 한다.

스위스에서 말하는 월 300만원의 기본소득이 한국에 어울리는 정책도 아니고, 혹여나 한국에서 정말 투표에 붙여진다면 나는 반대표를 던질 것이다. 이런 정책은 사회적인 공감대와 기본소득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으면 제대로 동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하나의 이론으로서는 너무 멋지지 않은가! 기본소득은 그 정책이 실제 우리 사회에 실행되는 것과는 별개로, 이 논의가 시작된 이유와 과정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는 것 만으로도, 이 사회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는 면에서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이 한 몸 잘 살고 내 자식 호강하는” 것이 아니고 “내 후손들과 이 사회가 장기적으로 행복하게 사는 것” 이라면 꼭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주제이다.

<관련 링크>

마지막으로 이제는 원문 링크가 사라졌지만, 김슷캇 님의 기본소득 블로그 선언 을 여기도 남겨 본다. 내가 모두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민주공화국의 복지는 보편적이며, 조건이 없어야 한다. 민주공화국의 모든 국민은 그들이 실질적인 주권자가 되기 위하여 물질적 독립을 보장받아야 한다. 기본소득은 모두의 억류된 자유와 권리에 대한 요구이며,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요구이다.

라는 이상에 대한 언급이 마음에 든다. 이상과 목표가 있어야 그 방향으로 조금씩 전진 할 것 아닌가.

<기본소득 블로그 선언>

이 도시에 남은 것은 성장주의 체제와 그를 보호하기 위한 과시적 통치 뿐이다. 이 나라의 모든 도시는 외환위기와 금융자본주의의 과도기를 지나며 저마다 상표가 붙여졌고, 모든 공기업은 공공성이 아닌 매출액으로 평가받고 있다. 모든 개인의 주거권, 사회권, 참정권은 물론이고 목숨 그 자체마저도 손익률에 기준해 평가되는 지금, 모든 도시민 역시 성장연합의 상업적 소유품일 뿐이다.

신자유주의 수탈 체제는 모든 사회공공성을 파괴하고 개인의 삶마저 갉아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수탈당하는 것은 현재와 과거 뿐만이 아니다. 고작 1년 동안, 100만명에 달하는 사람이 금융채무자라는 굴레를 덮어썼다. 우리의 미래는 점점 더 빠르게 수탈당하고 있다. 아비규환의 땅 위에서 정권은 이 나라가 선진국의 국격을 이룩했다며 축배를 들고, 우리가 쌓아올린 것은 언제나 우리의 것이 아니다. 가당치 않게도 민주공화국이란 상표로 포장된 이 나라에서, 우리는 정치경제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한다. 모두는 오로지 자산이고, 자원이며, 상품일 뿐이다.

생계를 잇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들이 쌓여가는데도 지배자들은 우리에게 더 양보할 것을 요구한다. 파업하지 말고, 투쟁하지 말고, 노동조합조차 만들지 말고, 눈을 낮추고, 일하라고 외친다. 그러나 우리에겐 일할 자리도 없다.

그들은 이제 우리에게 어떠한 공공재도, 어떠한 자연적 유산도 허락하지 않는다. 교통과 역사를 자본에게 넘겨주고, 강과 산을 개발산업에게 제물로 바치고, 급기야 사람마저도 생산하려 든다. 자녀를 생산하지 않은 게으른 부모에겐 복지를 제한하고, 지하철 역사에는 자녀를 많이 생산하지 않은 자를 죄인으로 묘사하는 광고를 붙이고 있다. 우리에겐 사회권도, 주권도, 생존권도, 그 어떠한 인격도 없다. 경제적으로 배제된 모든 이들은 인간사회로부터도 배제되었다.

봉쇄된 권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든 의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배제된 인격에게는 등가교환의 시장적 권리마저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에게 ‘법과 원칙’이라는 칼날을 들이대지만, 있는 자는 법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지난해 정권에 의해 단행된 이건희의 단독특별사면은 만인이 법 앞에 불평등하다는 새삼스럽지도 않은 사실을 역사에 각인했다. 만민의 자유를 탈취한 자들은 스스로에게 자유주의라는 기만적 명분을 휘장 삼아 두른다. 그 휘장 아래에서 빈민의 자유는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사상의 자유는 법적으로도 통제당한다. 그들은 심지어 자유를 위해 국가보안법을 지키자고 주장한다.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자유는 지배할 자유이며, 착취할 자유이고, 수탈할 자유다. 피지배자의 자유가 원천적으로 통제당하는 그들만의 사회에서, 물질적으로 독립되지 않은 그 어떤 누구도 법의 주인이, 국가의 주인이, 사회의 주인이, 자신의 주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법의 주인, 국가의 주인, 사회의 주인, 자신의 주인이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같은 공화국의 국민이기에.

공화적 자유는 타인의 지배와 간섭 위에서는 보편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사회의 오랜 역사가 이를 실증해 왔고, 오늘날 정권이 노골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용산 남일당에 몽둥이와 방패를 들고 난입한 경찰과 용역들은 지배자들 본인이었던가? 아니다.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과 맞서 싸운 구사대는 자본가들 본인이었던가? 아니다. 침략전쟁에 나선 파병군인들은 관료들이었던가? 아니다. 모두가 빈민, 부자유한 자, 그리고 노동자였다. 상처를 주는 역할도, 상처를 받는 역할도 부자유한 자들의 몫이다. 부자유한 우리는 점점 더 악하고, 신경질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본질적 모습이 아니다.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모습일 뿐이다. 물질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자들에게 지배와 간섭은 일상이다.

수탈당한 자유와 권리는 구걸로 돌려받을 수 없다. 그렇다고 흥정으로 돌려받을 수도 없다. 애시당초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수탈당한 우리가 흥정할 자산이 어디에 남아있는가? 수탈당한 모든 것을 돌려받을 방법은 역수탈 뿐이다. 이윤으로 전환된 모든 개인의 삶, 기여 없이 증식하는 자본가치, 이 모든 것은 보편적 개인이 돌려받아야 한다. 모든 불로소득과 투기소득은 강제적 환수를 통해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지급되어야 한다. 사회는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삶에 필요한 제반요건을 보장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부자유는 오직 ‘탈취의 부자유’ 뿐이다. 오직 우리가 같은 공화국의 국민이라는 이유만으로.

헌법1조는 이 나라를 ‘민주공화국’이라 규정하고 있다. 민주공화국은 모든 국민이 주권을 가지는 나라이며, 모든 국민이 주권을 행사할 실질적 자유를 가지는 나라이다. 국민주권은 국민 모두의 복지라는 사회경제적인 기본 조건이 충족된 경우에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보편적이고 충분한 복지는 민주공화국의 기초적 토대이며, 국가는 이를 보장할 모든 의무와 책임을 가진다. 노동이나 자산, 가족관계나 그 어떤 것도 민주공화국의 복지를 위한 거래대상이 될 수 없다. 민주공화국의 복지는 보편적이며, 조건이 없어야 한다. 민주공화국의 모든 국민은 그들이 실질적인 주권자가 되기 위하여 물질적 독립을 보장받아야 한다. 기본소득은 모두의 억류된 자유와 권리에 대한 요구이며,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요구이다. 억류된 자유를 해방하라.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라.

2010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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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복 Avatar

    홋홋홋 옛날 글이지만, 기본소득 선언문을 여기서 보다니 신기하군요. 저도 참여했었거든요(f.y.). 제안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압박은 아닙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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